Sermon

[주일설교나눔]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

후닝쫑찡 2025. 1. 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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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1531-32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5장인데요. 함께 31-32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본문을 정하는데 있어서 이번에 함께 나눠야 할 말씀이 무엇일까..

우리 교회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기도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떠올랐던 성경의 내용이 오늘의 본문이었습니다.

 

함께 읽었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이죠? 돌아온 탕자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 중 둘째가 아버지에게 재산을 나눠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재산을 나눠주었습니다.

이후에 둘째는 먼 나라로 떠나서 재산을 낭비하여 쓰더니 결국에는 모두 탕진하고 궁핍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이 있던 지역의 주민에게 도와달라 부탁을 하니 돼지를 돌보게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먹으려 했지만 그것 조차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쥐염열매는 기다란 완두콩 콩깍지처럼 생겼는데 길이는 10-20cm정도 되고

갈색빛으로 변해서 그 안에 있는 조그마한 씨앗 같은 것을 먹는 것인데 단맛이 난다고 합니다.

이 열매는 보통 동물의 사료로 사용되었고 기근이 심할 때는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돼지가 먹는 이 음식조차 먹지를 못하니까 둘째 아들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들이 아닌 품꾼으로 삼아달라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하나요?

화를 내었을까요? 다시 받아주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돌아온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보통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면 죄에 대해 돌이키고 주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죄인인 우리를 돌보아주신다.

죄인이 돌아오는 것에 크게 기뻐하신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등장하죠. 바로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이 돌아온 것에 기뻐해서 잔치를 베푼 것에 대해 화가 납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을 달래보아도 자신에게는 염소 새끼라도 줘서 친구들과 즐기게 해준 적도 없으면서 창녀들과 어울려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시기합니다.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화가 날만 합니다.

자신은 아버지 곁에서 들에 나가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는데

동생은 아버지의 귀한 재산을 탕진했음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니 화가 날만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뭐라 말합니까?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생은 죽었다 살았고 잃었다 얻은 것이기에 우리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아무리 죄인이라 하지만 가족이었던 사람이 돌아왔는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만 재산의 몫을 주지 않았습니다.

12절을 보면 각각 나누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첫째 아들도 재산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항상 자신의 것을 큰아들의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큰아들이 작은아들보다 갖고 있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작은 아들과 같습니까? 아니면 큰 아들과 같습니까?

 

저는 본문을 정할 때 이 말씀이 생각나면서 내가 뭔가 돌이켜야 하는 것이 있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돌이켜야 할 것들 있겠죠. 저는 여전히 죄를 짖는 죄인이니까요.

 

하지만 큰 아들의 모습을 통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탕자이야기,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에 빗대어 보겠습니다.

이곳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면 돌아온 탕자 비유에 빗대었을 때

첫째 아들의 위치에 있을까요? 둘째 아들의 위치에 있을까요?

첫째 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을 때 진정으로 함께 기뻐하고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 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계신가요?

 

아니면 첫째 아들처럼 그 영혼이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갖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하나님의 나라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잃은 것을 찾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바닥을 쓸면서 그것을 찾기 위해 열심을 다할 것이고

그것을 찾았을 때 이웃들까지 불러 모아 함께 즐기며 기뻐할 것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열 드라크마는 그 당시에 10일치 품삯이었는데 하루 품삯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큰 돈을 잃어버린 것입니까?

그것을 찾았을 때에 기쁨은 엄청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들을 맞이했다고

비난을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입니다.

목자가 양 백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마리가 있어도 그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돌아다닐 것이고 찾았을 때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 나라에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더 크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이처럼 큰 기쁨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나는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크게 기뻐하는가?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킨 의인이라면,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예수님이 해결해주신 분임을 믿음으로

그분을 영접해 구원받은 자인 그리스도인이라면서 내가 받은 은혜는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받는 은혜에 대해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좋아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만 좋은 것들을 주시는가?

왜 누군가에게만 복을 주시는가?

 

교회를 놓고 생각해볼까요?

어디 교회는 대형교회고 재정도 많고 사람도 많고 어느 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하고 성전을 새로 짖거나 크게 확장하기도 하는데 우리 교회는 왜 계속 작은가..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정말 좋은 것인가요? 예수님이 이러한 것으로 기뻐하신다고 하셨나요?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올 때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항상 아버지와 함께하고 있는 자녀라면 아버지가 갖고 있는 것들이 내 것이고 그것들을 누리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요?

그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28-31절을 보면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가겠다고 말했지만 간다고만 하고 가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얘기했는데 싫다고 했지만 이후에 돌이켜서

포도밭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믿음대로 행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121절과 마가복음 1123절에

예수님이 산을 보고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여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보이는 것들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 알고 그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사역하면서 사람이 늘어날 때도 있고 줄어들 때도 있고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도 지금의 장소에서 예배 드리는 것도 은혜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교회에 방문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회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공동체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우리 공동체에 있는 모두에게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혜들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가르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환경적인 영향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있는 한분 한분에게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필요한 변화들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성령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들보는 못 봐도 다른 사람의 들보는 잘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시는 일들은 못 봐도 다른 사람에게 행하시는 일은 잘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큰아들과 같이 어려울 수 있는 것이죠.

 

아버지는 큰아들에게도 재산의 몫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소유로 친구들과 잔치를 즐겼어도 아버지는 허락했을 것이고

큰아들이 재산을 잃었어도 아버지는 작은아들과 동일하게 큰아들을 대해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버지의 말씀에 대해 믿지 않으면 그것들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만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을 합니다.

제가 대학생 이후에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한 영혼에 대한 마음을 새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선교단체에서 규모가 큰 지부에 있다가 개척수준의 지부로 사역을 이동했을 때도

어려움이 없었고 우리 교회에서 사역할 때에도 사람의 숫자나 사역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것을 잊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내가 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없고

감사하지 않는 모습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다시금 한 영혼에 대한 마음을 알도록 해주셨고 둘째 아들을 보며 어려워했던 큰아들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는지 믿음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셨습니다.

 

이 교회가 개척한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본질을 지키기 위해 힘써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믿음을 지켜나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