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하나님과의 친밀감
하나님 음성 듣는 삶의 강의는 단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이지 하나님 음성 듣는 법이 아니다.
하나님 음성 듣는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관계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친밀감은 무슨 관계인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해 앞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1. 하나님은 누구신가?
1)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사42: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들의 찬양을 받기 위함이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다.
(갈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신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하나님 음성 듣는 삶에 대해 나누면서 알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사랑이다.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 존재 자체가 사랑이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는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종교를 만들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기에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자면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랑이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해 사랑이라 표현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다.
4)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다.
(예레미야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히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모두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다.
(다니엘6: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이방 나라의 왕(다리오)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했다.
(계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여기서 말씀하는 세세토록(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가 누구인가?
하나님이다. 이만희 아니다. 제발 신천지 노노..
요한계시록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자신들의 교주나 목사,
또는 누군가라고 칭하면 다 이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자신이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가?
그것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신이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사무엘,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나아간다는 것은 예배, 기도 등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순종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순종이기 때문이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나아감 -> 들음 -> 행함,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이라 할 수 있다.
2. 하나님을 아는 삶
여러분의 하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여러분들이 하나님에 대해 왜 그렇게 고백하는가?
하나님의 그러한 성품에 대해 경험했기 때문에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이 신실한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등등
하나님에 대해 자신 있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겪은 사람들과의 관계, 여러 상황과 환경들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 오해를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도 오해할 수 있다.
1)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은 신으로서 인간의 창조주이기도 하고 앞서 우리의 아버지라고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님을 보내셨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칭한다.
세 존재가 따로 있지만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100%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성경 곳곳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기록들이 있다.
(창1:2)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기도했다.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해서 서로의 친밀한 관계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한다.
2) 지식을 넘어 경험하여 아는 것
하나님을 안다고 했을 때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식을 넘어 경험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미 우리는 머리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하나의 종교를 믿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동침하다’와 ‘알다’가 같은 히브리어로 쓰였다.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ידע)
이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알다’가 헬라어로는 ‘기노스코’(γινώσκω), 히브리어의 ‘야다’와 같은 의미이다.
사전적 의미로 ‘알기 위해 배우다, 확신하다, 사귀게 되다’라는 의미로
주관적이며 체험적인 지식으로의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우리가 지식으로 알고 있을 수 있지만 직접 삶 속에서 맛을 봐야 아는 것이다.
ex) 마라탕을 먹어본 사람에게 마라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이 진짜인지 분별하는 기준이 곧 지식이다.
체험만 강조하고 지식이 없다면 신사도 운동 같은
극단적 신비주의 운동에 빠질 수 있다.
지식과 체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하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기존에 욥이 알던 하나님이 권선징악의 하나님이라면 나중에 만나게 된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자 모든 섭리의 주관자이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경험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
즉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쌓이기를 소망한다.
사람들이 받은 상처로 인해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기도 한다.
각자 살면서 경험하는 상황이 같아도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하나님 안에서 건강하게 해결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앞으로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하며
나아갈지 잘 정리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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